보릿고개 24 / 25 목차
6부 · 평화 / 불편

24화. 심사관

심사관은 이틀 전에 도착했다.

조합연합 지역관리국 소속 — 명함에 적힌 직함이었다. 나이는 마흔 중반쯤, 흰 와이셔츠에 태블릿을 든, 군더더기 없는 사람.

도착하기 전날 밤 마을 회관에 사람들이 모였다. 이장이 말했다.

"심사관이 와서 뭘 보나."

아버지가 대답했다.

"우리가 저들의 기준에 맞나 보는 거야. 문제는 그 기준이 뭔지 저들만 안다는 거고."

회관의 사람들은 각자 조심하는 법을 정리했다 — 자기 밭을 보여줄 것, 과시하지 않을 것,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할 것. '재는' 자에게 맞는 태도.

마을 회관에 모인 등록 농가들을 보며 그는 미리 인쇄된 목록을 펼쳤다.

"오늘은 갱신 심사입니다. 몇 가지만 확인하겠습니다."

질의는 차분했다.

재배 면적, 수확량, 종자 출처. 숫자 위주의 질문들 — 감정이 없어서 더 무서운 질문들이었다.

한 가지가 달랐다. 봉쇄 전의 조합 직원들은 자급농을 '이상한 사람들'로 취급했는데 이 사람은 취급이 달랐다 — 헌장 시대에 '농사지을 줄 아는 사람'은 희소 자원이었다. 조합의 지침이 그걸 반영하고 있는지, 그는 마을 사람을 대할 때 경계와 조심이 섞여 있었다.

경시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심사관의 태도가 제일 먼저 보여줬다.

한 농가가 질의 중에 말실수를 했다.

"농사가 힘들지 않으세요?" 심사관이 물었다.

"힘들지요. 근데 뭐, 살아야지요."

그 대답을 심사관이 태블릿에 적었다 — '의지 확인'. 봉쇄 전엔 '비효율적 노동'이라 적혔을 문장이 이제 '의지'로 읽히고 있었다.

아버지 차례가 됐다.

"이판석 씨, 등록 면적이 0.8헥타르인데 지난 5년간 평균이 0.75입니다. 소폭 늘었는데 이유가?"

"손자가 도와줘서요."

"손자요? 등록 외 인력의 경작 지원은 위반입니다."

"손자는 아직 열여섯이고 아버지 일을 거드는 중이에요. 등록 농가의 '가족 내 보조'는 조항상 허용 범위입니다."

아버지가 서류를 내밀었다. 조항을 인용한 준비된 답.

심사관이 서류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됐습니다. 다음, 종자 출처 — 자급구역 내 종자는 비라이선스 계통으로 알고 있는데 출처가 문서로 확인됩니까?"

"확인됩니다. 대대로 내려온 자가종자. 기록은 회관에 보관돼 있어요."

"자가종자라고 하셨는데." 심사관이 화면을 들어 보였다. "이 종자에 접합 유전자가 없는 걸 어떻게 입증하죠?"

"발아율로 입증됩니다." 아버지가 답했다. "발아 억제 단백이 없으니 싹이 나지. 입증은 눈으로 하면 되는 거고."

그 대답에 심사관의 눈이 잠시 멈췄다.

잠깐의 멈춤 — 내가 본 건 그 멈춤이 당황이 아니라 평가였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준비돼 있다'는 평가.

아버지 차례가 됐다.

질의는 계속됐다 — 재배 면적, 수확량, 종자 출처. 그리고 마지막에 뜬금없는 질문이 왔다.

"경작 외에 다른 소득원이 있습니까?"

아버지가 대답했다.

"없어요."

"그럼 어떻게 삽니까?"

"농사로."

심사관이 기록을 멈췄다. 농사로 사는 사람 — 조합 데이터에서 사라진 범주. 헌장이 만들려는 세상의 '모범 사례'였고 동시에 조합이 통제하려는 '예외'였다.

심사관이 덧붙였다.

"경작을 계속할 의지가 있으십니까?"

"있어요."

"이유는요?"

아버지가 대답했다.

"살아야 하니까요."

심사관이 태블릿에 적었다 — '의지 확인'.

마을 사람들은 씨앗을 숨기지 않았다.

숨기는 게 아니라 '작게' 지켰다 — 자급등록의 조건 안에서. 종자 저장은 '자가종자 보유'라는 등록 조항의 허용 범위였고 장독대 아래 병은 그 범위 안의 일부였다.

심사관이 그걸 물었을 때 아버지는 정직하게 대답했다 — 일부만.

"자가종자는 가구별 저장고에 있습니다."

"수량은요?"

"소량입니다. 심을 만큼만."

거짓이 아니었다. 심을 만큼만 — 그 '만큼'의 기준은 아버지가 정하는 거였다.

심사관이 창고를 확인하러 왔을 때 아버지는 장독대 아래 병을 보여주지 않았다 — 대신 가구 저장고의 소량만 보여줬다. 조항상 '자가종자 보유'가 허용 범위였고 범위 안의 것만 보여주는 건 법적으로 문제없었다. 다만 그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는 심사관도 몰랐다.

심사가 끝나고 나는 마당에서 혜성에게 전화했다.

"4분의 증거, 공개할까요?"

혜성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공개하면 뭐가 달라질까요?"

"조작 의혹이 제기되고 조합 이미지가 나빠지고…"

"협약은 못 깨요." 혜성이 끊었다. "서명은 끝났어요. 증거가 나와도 협약은 살아 있어요. 게다가 심사 중인 자급구역이 '조합 비난'을 퍼뜨리면 갱신 심사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나는 알았다.

증거는 지금 쓰는 게 아니었다.

"보관해요." 혜성이 말했다. "씨앗처럼. 심사가 끝나고 다음 재심의가 열리고 그 테이블에 누군가 '이유'를 물을 때 쓸 수 있는 카드로요. 지금 공개는 자급구역을 해치는 일이 될 거예요."

카드를 쥐고 있는 것과 쓰는 것은 다르다.

씨앗과 같은 논리였다.

혜성이 덧붙였다.

"당신이 이것을 보여준다는 것은 그게 '끝'이라는 의미예요. 아직 끝 아니에요. 보여주지 마세요. 지키세요."

심사가 끝난 뒤 마을 사람들은 회관에 모여 결과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은 심사보다 더 오래 걸렸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지를 다들 알기에. 갱신이 안 되면 자급구역은 끝나고 마을은 해산되고 싹이 트는 씨앗은 죽는다.

이장이 문 앞에 서서 연신 밖을 봤다.

"아직도 안 와."

"오는 중이야." 아버지가 말했다. "기다리는 게 심사야."

"기다리는 게 왜 심사야."

"재는 건 시간도 재는 거야. 우리가 얼마나 조마조마한지도 측정하겠지."

심사 결과는 이틀 뒤 나왔다.

「전북-자급-0117 외 12개 구역 — 갱신 승인. 갱신 기한: 3년.」

통과.

마을 사람들이 회관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소리 없이 우는 노인들 — 3년을 더 얻은 사람들. 영구가 아니라 3년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일단 남았다.

나는 결과지를 보며 혼잣말했다.

"이겼어."

아버지가 옆에서 말했다.

"이긴 게 아니야. 3년을 샀어."

심사관이 떠나며 아버지에게 건넨 말이 있었다.

차에 오르기 전 심사관이 돌아보며 말했다.

"내년에도 뵙죠."

아버지가 대답했다.

"그러시든가."

차가 떠나고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인사인지, 위협인지."

"같은 거 아닐까요?"

"같은 거야."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은 매년 와야 하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우리는 매년 심사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고. '내년에도 뵙죠'는 인사이자 예고지. 우리가 계속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갱신제라는 건 살아있는 한 계속 존재를 입증해야 하는 조건이었다.

예외는 평화가 아니라 계약이었다.

마당으로 돌아가는 길 아버지가 말했다.

"통과는 했는데 매년 이 맘때마다 올 거야. 그리고 매년 우리는 '존재할 자격'을 보여줘야 해. 그게 이제 우리 삶이야."

"힘들겠어요."

"힘들지. 근데 힘든 게 사는 거야. 쉬운 건 살아있는 게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