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창가의 싹
도시로 돌아온 첫 아침 나는 마트에서 쌀을 샀다.
12,900원에. 협약 가격으로. 줄 없이 배급 제한 없이 그냥 진열대에서 집어오는 방식으로.
평범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상했다.
52일 동안 불가능했던 일이 갑자기 다시 평범해졌으니까.
계산대에서 쌀봉지를 올려놓는데 계산원이 아무 말 없이 찍었다. 12,900원. 그 숫자가 터미널에 뜨는 걸 보면서 이게 세상의 새 가격이 됐다는 걸 느꼈다.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가격'이었다.
마트를 나오는데 어린애가 엄마 손을 잡고 진열대 앞을 지나가며 말했다.
「엄마, 쌀 사요?」
「응, 오늘은 사야지.」
두 달 전엔 그 문답이 불가능했다. 오늘은 그저 일상이었다.
세상은 빠르게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마트엔 쌀이 찼다. 배달 앱엔 음식이 돌아왔다. 빵집엔 밀가루가 맥주 공장엔 맥아가 다시 들어왔다. 사람들은 다시 외식을 했고 다시 후기를 썼고 다시 맛집을 찍었다.
다른 것도 돌아왔다 — 아니, 새로 생겼다.
농부가 존경받기 시작했다. 뉴스에 '생산자의 날'이 생겼고 교과서에 '제1 의무'라는 장이 들어갔다. 경시당하던 직업이 하루아침에 성직자의 반열에 오른 것처럼 보였다.
TV에서 앵커가 말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 밥은 온다. 근데 이제 알았습니다. 밥은 누군가의 허락으로 온다는 것을.」
허락이라는 단어 — 세상이 봉쇄를 '재난'이 아니라 '교훈'으로 배우게 된 방식이었다. 조합이 가르친 것: 농사는 국가가 아니라 조합의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배우는 자리에 있었다.
다만 그 존경엔 자격이 붙었다 — 조합이 허락한 농업만이 농업이었다. 아버지가 지은 밥은 헌장 기준으로 '비인가 경작물'. 세상은 농부를 숭배하면서 손으로 농사짓는 사람을 불법으로 남겨 두었다.
신농업주의의 모순이었다. 경시의 역전이 일어났는데 역전된 자리에는 진짜 농부가 아니라 농업을 '관리하는 자'가 앉아 있었다.
다만 작은 습관들이 생겼다.
집집이 쌀통을 채워두는 습관 — '혹시 몰라'라는 말과 함께. 마트에 쌀을 두 통씩 사는 사람들. 찬장 깊숙이 통조림을 쌓는 사람들.
52일이 남긴 선물이었다. 굶어본 세대가 생기는 습관 — 비축.
역사가 배운 방식 그대로였다. 세계대공황을 겪은 세대가 평생 빵을 쟁였듯이 봉쇄를 겪은 우리는 쌀통을 채운다.
관제센터에 복귀한 첫날 정우가 맞았다.
"팀장님! 돌아오셨어요!"
"왔어. 회색 점들은?"
"다 초록이에요." 정우가 모니터 벽을 보여줬다. "4만 2천 대 전부 정상 운행 중. 봉쇄 전이랑 똑같아요 — 아니, 달라진 게 있어요. 감사망이 생겼어요."
모니터에 새로 생긴 탭 — '유통 감사 계층'. 조합 레일 위에 얹어진 공동 감시망. 내가 협상 테이블에 올린 것이 실제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거 우리 팀에서 운영해요." 정우가 말했다. "팀장님이 만든 거래요."
나는 그 탭을 열었다.
흘러가는 곡물의 숫자들. 몫 산정 입력값, 바닥선 변경 기록, 적치 현황 — 조합의 블랙박스에 처음 난 구멍.
작은 구멍. 그래도 구멍이었다.
정우가 물었다.
"팀장님, 이걸로 뭘 볼 수 있어요?"
"아직은 가격이랑 재고. 근데 데이터가 쌓이면 — 조합이 가격을 정하는 '방식'을 알게 돼요. 지금은 우리가 숫자를 받아들이는 거지, 검증하는 건 아니니까."
"그게 바뀔 수 있어요?"
"시간이 걸려요. 근데 구멍이 없으면 시작도 못 해요."
정우가 끄덕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팀장님, 저 이번에 자격증 땄어요. 조합 레일 관제사. 이제 저도 농업 관련 직종이에요."
그리고 아버지의 지위가 바뀌었다.
자급구역에 방문객이 오기 시작했다 — 조합이 보낸 '전통경작 기록관'들. 아버지의 손 모내기를 촬영하고 아버지의 김매기를 기록하고 아버지의 씨앗 보관법을 '문화자산'으로 분류하는 사람들.
아버지는 그들을 받아들였다 — 거절하면 갱신 심사에 영향이 있으니까. 존중받되 관리되는 방식으로 아버지는 '성직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귀한 사람이 됐네."
전화로 아버지에게 말했더니 아버지가 웃었다.
"귀한 사람은 아니야. 귀한 '것'이야. 전시되는 것은 존중이 아니라 진열이지."
아버지가 덧붙였다.
"기록관들이 와서 내가 벼 베는 걸 찍어가. 박물관에 넣을 거래. 살아있는 걸 기록으로 만드는 거지 — 그게 이 시대의 방식이야. 살아있는 걸 없애는 대신, 살아있는 걸 '유물'로 만드는 거야."
저녁 아파트 베란다에서 상자를 꺼냈다.
봉쇄 중에 심었던 상자 — 싹이 안 난 채로 놔뒀던 접합 유전자 씨앗이 죽어 있던 흙.
그 흙을 손으로 헤집었다. 죽은 씨앗의 껍질이 흙에 섞여 있었다 — 발아하지 못한 채로 땅속에 누운 심어서는 안 되는 종속형 씨앗들. 그걸 조심스럽게 골라냈다.
흙을 새로 돌리고 아버지가 준 봉지를 열었다.
장독대 아래 병에서 나눈 씨앗 — 아주 조금.
손바닥에 얹으니 씨앗이 조금 흘렀다. 조심스럽게 한 줌을 상자에 뿌리고 흙을 덮었다.
물을 주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싹이 나는 데 나흘이 걸렸다.
새벽에 상자를 들여다보다가 보았다.
흙 사이로 올라오는 작고 연한 초록 — 두 점.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땅을 뚫고 나온 것.
나는 그걸 오래 봤다.
52일 동안 멈춰 있던 세상이 움직였던 것처럼 이 작은 싹도 땅을 뚫고 움직였다. 흙을 뚫는 힘 — 씨앗이 가진 유일한 힘. 그게 여기 있었다.
세상에서 몇 안 되는 조건 없이 자라는 것. 인증 발아제 없이 라이선스 없이 그냥 흙과 물과 시간만으로 나오는 싹.
협약은 서명됐고 쌀은 12,900원이고 감사망은 작동하고 자급등록은 3년을 얻었다. 세상은 굴복한 대로 굴복하고 남은 걸 남겼다.
그리고 이 싹이 올라왔다.
아버지에게 사진을 보냈다.
답은 밤에 왔다.
「자라는구나.」
한 줄.
그리고 이어서
「이제 농부는 귀한 사람이 됐어. 헌장이 그렇게 만들었어. 근데 네가 지은 밥은 아직 불법이야 — 헌장이 허락한 농업만이 농업이니까. 존경은 됐는데 자유는 아직이야.」
「그 싹을 네가 봤다는 것을 잊지 마라. 신농업주의 시대에 네가 키운 건 씨앗이 아니라 권력이야. 허락 없이 자라는 유일한 것 — 세상이 다 잊어도 너는 그걸 봤다는 걸 알아야 해.」
그날 밤 혜성에게도 보냈다.
혜성의 답.
「4분의 카드는 아직 쥐고 있어요. 재심의가 오면 쓸 거예요. 그리고 그 싹 — 잘 키워요. 작게 키워야 오래 가요.」
혜성이 이어서 보냈다.
「그리고 한 가지 — 그 싹을 보여주지 마세요. 심사에도 기록에도 어디에도. 자급농이 아닌 사람이 비라이선스 씨앗을 키우는 건 헌장상 불법이에요. 싹은 보이지 않게 크세요."
자정이 넘어 나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
화분의 싹이 보였다. 연두색 두 점.
평화는 왔다.
쌀은 다시 오고 가격은 안정됐고 식탁은 돌아왔다 — 조합이 정한 조건으로 매년 갱신되는 협약으로 그리고 헌장이 선언한 신농업주의라는 이름의 질서로.
돈이 왕이던 세상은 식탁 위에서 끝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 질서가 앉았다 — 생산하는 쪽이 정점인 우리가 경시했던 것이 주인이 된 세상.
평화인가 불편인가.
둘 다였다. 그리고 둘 다인 채로 살아가는 것이 이제 세상의 방식이었다.
쌀이 다시 들어온 날 아무도 묻지 않았다 —
이 질서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다음에 잠그는 건 누구인지.
우리는 평화를 샀다. 평화의 가격표에 적힌 건 경시당한 것들의 반란이 만든 새 왕좌였다.
그리고 창가에서는 싹이 자라고 있었다.
작게. 조용하게. 헌장의 허락 없이.
신농업주의 시대에 허락 없이 자라는 것은 권력이자 불법이었다. 누가 이 싹을 소유하는가가 아니라 이 싹이 어디까지 자랄 수 있는가가 — 세상에 남은 마지막 질문이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우리는 대안이 없어'라고. 맞았다 — 대안은 없었다. 하지만 예외는 있었다.
예외는 저항하지 않는다. 예외는 그저 남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어도 남는 것.
이 창가의 싹이 그 예외였다.
(보릿고개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