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23 / 25 목차
6부 · 평화 / 불편

23화. 늦은 수확

개방 후 첫 수확은 두 종류의 들녘을 만들었다.

조합의 들녘에서는 로봇이 벼를 벴다.

드론이 상공에서 성숙도를 스캔하고 자율 수확기가 직선으로 나아가며 벨트가 이삭을 빨아들였다. 사람은 없었다 — 관제사는 원격에 있고 그마저 화면 숫자를 볼 뿐. 완벽하게 효율적인 아무도 숨쉬지 않는 들녘.

자급구역의 들녘에서는 사람이 벼를 벴다.

손에 낫을 들고 이랑을 따라 걸으며 익은 것과 덜 익은 것을 눈으로 가르며. 느렸다. 비효율적이었다. 그리고 살아 있었다.

낫으로 베는 소리 — '서걱 서걱'. 이 소리가 들리는 마을과 들리지 않는 세상이 있었다. 조합의 들녘은 조용했다. 기계가 벼를 베는 소리는 규칙적이고 규칙적인 소리는 사람 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그 풍경을 논두렁에서 봤다.

한 시간쯤 보고 있었을까. 드론 한 대가 내 머리 위를 지나갔다 — 성숙도 스캔을 마치고 다음 논으로 가는 길.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가는 그림자가 벼 이삭 위에 잠시 어둠을 드리웠다.

아버지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게 농사야?"

"아뇨." 나는 대답했다. "저건 감시요. 농사는 아버지가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아버지가 다시 허리를 굽혔다.

"저것도 농사야. 농사의 한 방법이지. 우리가 만든 방법이고 저게 만든 방법이야. 방법이 다르면 세상이 달라지는 거야 — 그걸 지금 모두가 보고 있는 거지."

아버지가 물었다.

"우리가 진 걸까, 지게 둔 걸까."

"구분이 돼요?"

"아니." 아버지가 솔직하게 말했다. "세상은 굴복했어. 가격은 조합이 정하고 유통은 조합이 쥐고 심사권도 조합이 쥐어. 그런데 우린 남았어. 등록도 남았고 씨앗도 남았고 이 들녘도 남았어. 이긴 걸 지게 둔 건지, 진 걸 이기게 둔 건지."

"답이 없어요?"

"답이 없어." 아버지가 벼를 베며 말했다. "역사는 결과로 판단하는데 아직 결과가 안 났어. 지금은 중간이야. 중간엔 판단하면 안 돼. 중간엔 그냥 해야 해."

아버지가 낫을 놓고 허리를 폈다.

"우리 세대는 봤어. 농사가 사라지는 걸. 그리고 네 세대는 봤지 — 농사가 세상을 멈추는 걸. 다음 세대는 뭘 볼지 몰라. 그게 보이는 순간이면 너희가 이번에 지킨 게 맞았는지 알게 돼."

나는 아버지 옆에서 벼를 베며 생각했다.

중간엔 판단하면 안 된다.

봉쇄는 끝났고 협약은 서명됐고 쌀은 돌아왔다 — 그래서 다들 '끝났다'고 말한다. 근데 이건 끝이 아니라 중간일 수 있다. 다음 수확기의 재심의 갱신 심사의 결과 씨앗의 운명 — 다 아직 안 정해졌다.

중간엔 그냥 한다.

벼를 벤다. 씨앗을 지킨다. 숫자를 본다.

그리고 헌장이 바꾼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지위.

봉쇄 전엔 '농사지을 줄 아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었다. 기계가 하는 일을 손으로 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몇 백 명. 그게 헌장 이후 달라졌다 — '농사지을 줄 아는 사람'은 이제 세상에서 제일 희소한 사람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대우가 달라졌다. 봉쇄 전엔 자급농들이 도시에서 받던 눈빛은 '안쓰러운 사람들'이었다. 이제는 다르다 — 사람들이 자급농을 보는 눈에 경외가 섞였다. 경외와 불안이 섞인 눈빛.

조합이 기계를 쥐고 있는 한 손으로 농사짓는 기술은 조합도 갖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조합은 그걸 알았다 — 그래서 자급구역을 '성역'으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문서 이름은 「전통경작 보존구역 지정(안)」. 자급구역을 '보존'하는 대신 그 안의 경작을 조합의 '교육·전시 자산'으로 관리하겠다는 안건.

성역이라는 이름의 관리 구역. 지우지 못하니 간직하고 통제하겠다는 계산.

마을 회관에서 이장이 그 문서를 읽고 말했다.

"성역이래. 우리가 성역이 됐대."

"성역이 뭐야."

"모르지. 귀한 곳인가 갇힌 곳인가. 아마 둘 다겠지."

저녁 아버지가 낡은 상자에서 편지를 꺼냈다.

십 년 전 62일 보이콧이 끝나던 날 아버지가 나에게 쓰려다 부치지 못한 편지였다.

읽었다.

「다솜아.

오늘 보이콧이 끝났다는 걸 들었다. 네가 그 광장에 있었다는 것도 안다. 우는 건 아니냐.

세상이 지는 날은 이렇게 온다. 큰 소리가 아니라 작은 접힘으로.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는 걸음으로. 그 걸음이 몇만 개가 모이면 세상이 끝난다.

근데 말이다, 지는 날에도 집에 오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너는 거기 있었어도 돼. 있어야 했고. 본 사람이 기억하는 사람이 되니까.

너는 관제를 해. 멈춘 걸 보는 사람이야. 그 재주가 이 시대엔 맞는 거 같다. 멈춘 걸 보는 사람만이 다시 움직일 때를 아니까.

씨앗은 아직 여기 있다.

아버지가.」

편지를 다 읽고 고개를 들었을 때 아버지는 마루 끝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왜 안 보냈어요?"

"보낼 필요가 없었어." 아버지가 말했다. "너가 광장에서 배운 걸 알았으니까. 편지보다 경험이 먼저 가르쳐야지."

아버지가 편지를 접어 다시 상자에 넣었다.

"이제 읽을 때가 됐지. 편지는 필요할 때 오는 게 맞아. 10년 일찍 왔으면 못 읽었을 거야. 그때는 네가 몰랐으니까 — '있어야 한다'는 말의 뜻을."

그리고 다음 날 통지가 왔다.

마을 회관 게시판에 붙은 조합 공문.

「자급등록 구역 갱신 심사 예고 — 대상: 전북-자급-0117 외 12개 구역. 일정: 익월 5일. 심사 기준: 협약 부속서 3장 기준.」

이장이 공문을 떼어와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왔어. 심사가 왔어."

공문은 한 장이었지만 그 한 장에 담긴 건 무거웠다.

갱신 심사 — 통과하면 남는다. 탈락하면 조합 곡물로 전환한다.

아버지가 공문을 읽고 한마디 했다.

"심사 기준이 뭔지 알아야겠다."

"부속서 3장이에요. 내가 봤어요 — 경작 자격, 면적 적합성, 비인가 물품 여부. 다 애매한 말이에요. 기준을 올리면 아무도 못 넘고 내리면 다 넘어요."

"애매한 게 조합이 쥔 칼이야."

조합이 쥔 심사 기준으로 우리의 예외가 판가름나는 날이 온다.

마을 사람들이 회관에 모여 그 공문을 봤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우리가 심사를 받아야 해."

이장이 말했다.

"심사를 받는 건 맞는데 뭘로 받는지가 문제야. 조합의 기준으로 받는 거라면 그 기준은 우리가 정한 게 아니라 저들이 정한 거야. 저들이 정한 기준으로 우리를 재겠다는 거지."

"재는 게 어때."

"재는 자가 정한 자로 재는 거야. 심사관이 오면 우리는 '보여주는' 게 아니라 '재는' 거지."

밤이 됐다.

마당에 앉아 수확이 끝난 논을 봤다. 베어낸 자리엔 벼 그루터기가 남았고 그 아래 흙이 보였다. 내년에 다시 이삭이 올라올 자리 — 싹이 트는 자리와 싹이 트지 않는 자리의 경계.

심사가 오면 우리는 그 경계를 보여줘야 한다. 심사관이 보고 재고 허락하는 경계. 그리고 나는 알았다 — 우리가 지키는 건 땅이 아니라 '싹이 트는 권리'다. 그 권리를 조합이 재는 시대.

그 시대를 통과하는 게 지금의 싸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