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싹이 트는 마을
마을 입구에서 아버지를 만난 건 예상과 달랐다.
반갑게 맞이하는 게 아니었다.
아버지는 논두렁에 서서 벼를 베던 손을 멈추고 나를 봤다. 오른쪽 다리를 절며 — 그 다리는 내가 어릴 때부터 그랬다. 탈곡기에 치인 자리가 젊은 시절에 잘못 아물어서.
살이 빠져 있었다. 얼굴은 검고 손등은 갈라져 있고 눈은 여전히 맑았다. 한 달 동안 세상은 멈췄는데 아버지는 그 사이 밭을 일구고 벼를 베고 있었던 거다.
"왔냐."
"왔어요."
그게 다였다.
아버지는 다시 벼를 베기 시작했고 나는 논두렁에 내려앉아 그 뒷모습을 봤다.
손으로 벼를 베는 사람을 본 게 얼마 만인가.
아마 십 년? 아니, 그 이상.
낫이 벼를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 서걱 서걱. 도시의 소음과 달랐다. 기계가 아닌 소리. 사람이 세상을 만지는 소리.
저녁 밥상은 단촐했다.
쌀밥, 된장찌개, 김치 두 가지, 나물 한 가지.
서른아홉 날 만에 처음 먹는 제대로 된 밥이었다. 배급 에너지바와 주워 먹은 찬밥 말고 누군가 지어준 밥.
한 입 먹는데 눈물이 났다.
쌀이 달았다. 원래 쌀이 이렇게 달았나 — 39일 동안 배급 쌀만 먹다가 진짜 쌀을 먹으니 그 차이가 몸으로 왔다. 씹을수록 단맛이 올라오는 쌀. 조합 쌀에선 없던 맛이었다 — 인증 곡물도 당연히 쌀이었지만 이 쌀은 뭔가가 달랐다. 시간이 만든 맛인지, 흙이 만든 맛인지.
나는 우는 걸 참지 못했고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밥을 떴다.
밥을 다 먹고 나서야 아버지가 말했다.
"여기는 밥이 있다고 했지."
"네."
"밥이 있다는 건 쌀이 있다는 뜻이 아니야. 지을 줄 아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지."
아버지가 찌개를 저으며 덧붙였다.
"도시 사람들은 쌀이 없다고들 하더라. 쌀은 있어. 창고에 가면. 근데 그 쌀을 지을 사람이 없지. 쌀을 '지을' 사람이 없는 게 굶는 거야."
그 말이 이 마을의 전부였다.
밤이 되기 전 마을을 둘러봤다.
아버지와 같이 걸었다. 밭이 끝나는 곳에서 다음 밭이 시작됐고 그 끝엔 또 논이 있었다. 저녁 빛에 벼가 물들었다 — 익은 벼의 색 도시에서 본 적 없는 노랑.
마을 사람들이 밭에서 일을 끝내고 돌아오고 있었다. 호미를 든 사람, 수레를 끄는 사람, 이마의 땀을 닦는 사람. 지나갈 때마다 나를 봤고 다들 같은 표정을 했다 — '서울에서 온 딸'이라는 걸 아는 눈빛.
한 아주머니가 지나가며 물었다.
"서울서 왔어?"
"네."
"서울은 뭐가 제일 없어?"
나는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밥이요."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우리도 그걸 애먹어서 만들었으니까."
'애먹어서'라는 표현 — 농사가 '애먹는 일'이라는 걸 이 마을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도시가 잊고 산 것.
자급구역은 열두 가구였다.
등록 농가 열세 명 — 아버지를 포함해. 평균 연령 예순다섯. 각 가구가 자기 소비분을 경작하고 판매는 금지되고 조합의 '시찰'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존재가 인정된 사람들.
조합 시찰이란 — 분기에 한 번 조합 관리자가 와서 논밭을 보고 생산량을 기록하고 '이상 없음' 도장을 찍는 절차. 감시라기보다 관리에 가까운 행정. 조합이 이 사람들을 완전히 죽일 수도 있는데 죽이지 않고 관리하는 이유를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 예외가 보이면 이념이 안 서니까 예외를 '관리하는' 형태로 품어두는 거다.
마을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은 복잡했다.
도시에서 온 사람. 조합의 세상에 사는 사람. 그리고 이판석의 딸이라는 사람.
밤에 마을 회관에 모인 사람들이 나를 봤다. 누군가 중얼거렸다. "서울에서 왔대." 다른 누군가가 대답했다. "밥 먹으러 왔겠지." 처음엔 냉담한 눈빛이었는데 아버지가 "제 딸입니다"라고 하자 조금 누그러졌다.
저녁에 이장이 찾아왔다. 우렁찬 목소리의 노인.
"이판석 딸이라고? 서울서 걸어왔다며?"
"네."
"밥은 먹었나?"
"먹었어요."
"그럼 됐지."
그게 이 마을의 환영식이었다.
다음 날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마을을 돌았다.
논, 밭, 장독대, 창고. 그리고 아버지가 보여준 것들.
"이건 작년 쌀. 이건 올해 모. 저기 저 이랑은 할아버지 때부터 갈던 자리야."
직선으로 반듯한 논이 아니었다. 조합의 기계가 가는 논은 자로 잰 듯 직선인데 여긴 구불구불했다. 손으로 간 자리.
논이랑마다 이름이 있었다 — '김 할아버지 논', '위쪽 논', '우물 옆 논'. 지도에도 없는 이름들이었다. 그 이름들이 논을 지키는 장치라는 걸 알았다 — 이름이 있으면 버리지 않으니까.
"정직하게 안 가도 벼는 자라." 아버지가 말했다. "기계는 직선을 좋아해. 사람은 구불구불을 좋아하고. 둘 다 벼는 벼야."
"…여기는 봉쇄가 없네요."
"있어." 아버지가 대답했다. "조합 시찰관이 다녀간 지 며칠 안 됐어. 구역 밖 반출 금지 통지가 와 있고. 근데 봉쇄로 굶는 건 아니지 — 애초에 우리는 조합 밥을 안 먹는 사람들이니까."
그게 예외의 논리였다.
봉쇄는 조합에게 의존한 자를 멈춘다. 의존하지 않은 자는 봉쇄 바깥이다.
저녁 아버지가 장독대로 나를 불렀다.
장독대 한 켠 항아리들 사이 — 아버지가 발로 바닥을 가리켰다.
"여기."
"뭐요?"
"병."
아버지가 쪼그려 앉아 흙을 팠다. 어릴 때 본 것보다 손이 느려져 있었다. 나는 같이 앉아 흙을 함께 팠다.
흙을 파는 손이 따뜻했다. 도시에서 내 손은 39일 동안 키보드와 냉장고 문을 만졌는데 여기서 내 손은 흙을 팠다. 흙을 파는 일이란 그런 거였다 — 세상과 직접 만나는 일.
나온 건 낡은 유리병 하나.
병 안에는 씨앗이 있었다.
작은 알갱이들. 갈색빛이 도는 마른 씨앗.
"이게 뭐예요?"
"씨앗." 아버지가 병을 들어 올렸다. "조합 라이선스가 아닌 씨앗. 심으면 싹이 나는 씨앗. 세상에 얼마 안 남은."
"…싹이 나요?"
"나."
아버지가 병을 내 손에 올려줬다.
가벼웠다. 병 하나가 이렇게 가벼울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그런데 손바닥에 얹힌 무게감은 그 가벼움과 달랐다.
"할아버지가 나한테 줬어. 나는 너한테 주는 거야."
"왜 저요?"
아버지가 대답 대신 물었다.
"너는 저항해 봤자라고 생각해?"
"……몰라요."
"저항은 대안이 있어야 한다고 했지. 대안은 씨앗이야." 아버지가 병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있으면 세상이 어떻게 잠겨도 작은 틈이 있어. 씨앗을 지닌 사람이 있으면 시범이 완벽해지지 못해. '우리 없이는 못 산다'는 문장에 '우리 없이도 사는' 반례가 되니까."
"그게 뭘 바꿔요?"
"모르겠어." 아버지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근데 지킨다는 건, 뭘 바꾸려고가 아니라 없어지는 걸 막는 거야. 나는 이걸 오십 년 지켰어. 너한테도 지키라고 주는 거야."
그날 밤 마당에 앉아 병을 들여다봤다.
싹이 나는 씨앗.
세상에서 몇 안 되는 조건 없이 자라는 것.
도시에서는 수십만 개의 상자가 흙만 남았는데 이 산골의 병 하나에 세상이 뒤집힐 수 있는 게 들어 있었다.
아니, 뒤집히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씨앗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의 차이만큼은 확실하다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