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유리벽
가격상한법 발의안이 완전히 죽은 건 봉쇄 40일째였다.
법안을 밀던 의원단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내용은 '심사 무기 보류'였지만 익명의 의원이 기자에게 한 말이 진짜 내용이었다.
"협상 테이블이 열려 있어요. 우리가 법을 통과시키면 조합이 테이블을 걷어찹니다. 그리고 우리는 재고가 끝나요. 패가 없는데 블러핑을 할 수가 없습니다."
패가 없다는 말이 이번에도 전부였다.
기자회견을 보며 나는 의원들의 얼굴을 봤다. 공개된 장면에서는 '신중한 검토'라고 말하는 입들. 익명에서만 '패가 없다'고 말하는 입들. 두 얼굴 사이에 있는 게 이 시대의 정치였다 — 압력을 받아들이는 얼굴과 그 압력을 합리화하는 얼굴.
기자회견 영상 아래 댓글들은 허탈함이었다. '또 접었네', '광장 나간 사람들은 뭐가 되는 건데', '쌀 없으면 다 얘기가 안 되는 거지'. 백만 서명이 한 문장에 쓸렸다.
서명은 많아도 쌀은 없었다.
모든 통로가 막힌 이유를 나는 이제서야 제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정리라기보다 자백에 가까웠다. 한 달을 지켜보면서 모은 증거들 — 이 모든 게 이미 다 답해진 질문들이었다는 걸 늦게 알았다.
첫째, 법. 조합은 위법을 하지 않는다. 담합이 아니라 공동 마케팅, 몫이 아니라 공급 안정, 봉쇄가 아니라 '안전 절차'. 법은 형식을 처벌하는데 조합의 형식은 완벽했다.
둘째 시위. 시위는 압력인데 압력이 먹히려면 상대가 '듣는 귀'가 있어야 한다. 조합은 답변 한 줄 외에 아무 반응도 없었다. 귀가 없는 상대에게 소리는 허공이다.
셋째 소송. 반독점 소송은 준비단이 여전히 싸우고 있었지만 소송은 결과가 나오는 데 몇 년이 걸린다. 재고는 며칠치였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었다.
준비단의 변호사들이 모인다는 기사를 봤다. 대법관 출신, 돈길을 잘 아는 변호사, 식품법 학자. 훌륭한 팀이었다 — 그리고 그들이 쓸 시간은 재고보다 길었다. 판결은 내년에 나올 것이고 우리는 다음 달을 넘기지 못했다. 법은 정확했지만 느렸고 봉쇄는 거칠었지만 빨랐다.
넷째 기술. 해킹팀이 조합 레일의 인증 합의망을 뚫으려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과는 불명. 내가 아는 건 하나다: '인증 합의'는 방화벽이 아니라 단말들의 습관이었다. 하나를 뚫어도 나머지가 따라가지 않는다. 습관은 해킹되지 않는다.
해킹팀의 소문을 처음 들은 건 소담의 입을 통해서였다. "어떤 팀이 인증 서버에 닿았대. 근데 거기 있는 게 뭐냐면 — 인증을 '거절'하는 기능밖에 없대. 단말이 스스로 묻고 답하는 구조야. 서버는 그냥 대답을 중계할 뿐이야." 소담이 어깨를 으쓱했다. "뚫을 벽이 없어. 다 분산돼 있어서."
다섯째 대안 생산. 싹이 트지 않았다.
모든 벽이 유리로 돼 있었다. 보이는데 넘을 수 없는 벽.
유리벽의 무서운 점은 투명함이다 — 벽 너머가 보이니까 넘을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세상은 이 착각을 한 달간 반복했다. 법도 시위도 소송도 해킹도 자급도 — 전부 보이는데 넘지 못했다.
소담의 교환소를 다시 찾았다.
장부가 얇아져 있었다.
"재고가 떨어져."
소담이 먼저 말했다.
"교환소는 뭘 교환할 게 있어야 하잖아. 곡물이 안 들어오니까 장이 말라. 처음엔 쌀을 교환했는데 이젠 쌀 교환 신청이 거의 없어 — 쌀 가진 사람이 안 파니까. 쌀이 유일하게 안 팔리는 물건이 됐어."
"금이 더 귀한 세상이 되겠네."
"금?" 소담이 웃었다. "금은 안 먹히잖아. 이 장에서 제일 비싼 건 쌀이고 두 번째는 계란이고 세 번째는 흙이야. 금은 한참 아래야."
소담이 계속 말했다.
"재밌는 건 말이야 — 사람들이 쌀을 안 파는 게 아니야. 팔 '여력'이 없는 거야. 쌀을 가진 사람은 그 쌀을 먹어야 하는 사람이라 팔 수 없고 팔 수 있는 사람은 쌀을 안 가졌어. 다들 마지노선에 서 있어."
장부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문구를 봤다.
'곡물이 안 들어오는 장은 교환할 것이 소진되면 끝난다.'
내가 쓴 건 아닌데 소담이 그걸 보고 물었다.
"팀장이 어제 한 말이야. 맞는 말이어서 적어놨어."
"적어놓으면 뭐 해. 소진되면 끝인데."
"기록이잖아." 소담이 말했다. "누가 이걸 봐야 하진 않아도 봤다는 기록은 남는 거야."
교환소를 나오며 나는 생각했다.
모든 벽을 다 부딪혀본 사람은 두 가지를 배운다 — 벽이 벽이라는 것과 벽 너머가 있다는 것. 소담의 장부가 얇아지는 걸 보며 나는 '장이 끝난다'는 게 뭔지 이제 알았다. 장이 끝나는 건 물건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희망이 떨어지는 거다.
밤 관제센터에 혼자 남았다.
실질 동원 재고 5일치.
곡물이 안 들어오는 장이 끝나는 속도와 국가가 굴복하는 속도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의 속도를 나란히 놓고 봤다.
모니터 벽을 올려다봤다. 4만 2천 개의 회색 점. 그 점들이 움직이지 않는 한 내가 이 방에 있는 의미는 기록원의 의미였다.
그리고 알았다.
나는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관제는 멈춘 것을 보는 일이다. 보는 일은 기록이고 기록은 답이 아니다. 답이 필요하면 움직여야 한다.
아버지의 세 번째 메시지를 다시 들었다.
「보러 와라. 걸어서 오면 된다. 기계는 사람 발은 못 막으니.」
봉쇄는 곡물을 잠갔다. 도로를 잠근 게 아니다. 사람의 이동을 막는 것도 아니다. 막힌 건 '곡물'이라는 화물 하나뿐이다.
나는 트럭이 없어도 갈 수 있다.
걸어서.
결심의 실질적 이유는 세 가지였다.
하나 아버지는 '싹이 난다'고 했다. 자라는 씨앗이 있는 곳 — 그게 뭔지 봐야 한다.
둘 이 도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왔다. 숫자를 세는 일은 끝났다. 이제는 몸이 가야 한다.
셋, 그리고 이건 나 혼자만 아는 것 — 아버지와 나는 서른 날을 넘어, 어쩌면 십 년을 넘어서도 못 나눈 대화가 있었다.
봉쇄가 끝나고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가면 그 대화는 영원히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네 번째가 있었다 — 말로 못 한 이유.
나는 52일 동안 '멈춘 것'을 보는 일을 했다. 그 일은 중요했고 나는 잘했다. 하지만 그 일은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 회색 점을 보는 건 '기록'이지 '행동'이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가는 것은 내가 처음으로 하는 '보는 일'이 아닌 '하는 일'이었다.
다음 날 아침 정우에게 말했다.
"나 정읍까지 걸어갈 거야. 관제는 네가 봐. 회색 점들 — 아무도 안 보면 진짜 멈춘 거라고 네가 말했잖아."
정우가 어이없는 얼굴을 했다.
"팀장님, 200km예요."
"알아."
"걸어서요? 차는요?"
"차는 곡물이 못 타서 못 가. 나는 곡물이 아니니까 갈 수 있어."
가방을 쌌다. 물, 에너지바 — 남은 배급분 전부, 그리고 지도와 손전등과 우의.
관제 화면의 회색 점들을 마지막으로 봤다.
4만 2천 대. 내가 떠나는 이 나라는 여전히 멈춰 있을 테고 그 멈춤 위를 나는 걸어간다.
센터를 나서며 정우가 불렀다.
"팀장님."
"응."
"밥 구해오세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싹도 구해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