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12 / 25 목차
3부 · 갈등 과정

12화. 돈은 못 먹는다

세상 꼭대기의 일들부터 쓰러졌다는 말은 거짓말이고 정확히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냥 할 일이 없었다.

기계는 라인이 멈췄고 손은 라인은 도는데 라인 위에 올릴 것이 없었다. 우리가 자랑하던 정교한 시스템들 — 배달 앱, 결제망, 실시간 재고 관리 — 전부 '돌아가는' 상태로 멈춰 있었다.

첫 주말에 일어난 일은 소소했다. 카페가 문을 닫았다 — 밀크가 없어서. 편의점이 조기 폐점했다 — 도시락이 안 들어와서. 사람들은 그걸 '잠깐의 불편'으로 받아들였다.

불편이 주를 넘기니까 불편이 아닌 게 됐다.

금융가부터.

여의도의 돈집들은 세상에서 가장 정교한 기계를 가지고 있었다. 실시간 차트, 알고리즘 트레이딩, 글로벌 결제망 — 봉쇄와 무관하게 전부 완벽하게 돌아갔다.

다만 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곡물의 내일을 파는 장은 죽었다. 사고 팔 곡물이 없으니까. 먹거리 조각들은 바닥을 쳤고 나눔은 끊겼고 트레이더들은 스크린 앞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돌아가는 시스템이에요."

소담이 금융가 친구에게 들었다며 전해준 말이다.

"살 게 없으니까."

그 친구의 이름을 기억한다. 정확히는 안 만났지만 소담이 전한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 50층 빌딩 창문을 열고 내려다보는 사람 아래에서 마트 줄이 보이는데 자기가 파는 숫자가 그 줄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아는 사람.

회사 조각을 사고파는 장은 살아 있었다. 조각들이 오내렸다. 다만 곡물·식품·나르는 일의 조각이 사라진 장은 체중계 없는 체중 측정이었다 — 숫자는 있는데 측정할 것이 사라진 장.

그 장의 규칙이 하나 바뀌었다. '무엇이 오르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먹을 수 있는가'로. 장에선 그걸 '밥 프리미엄'이라 불렀다 — 배터리 회사보다 곡물 저장고가 있는 회사가 더 가치 있어진 세상.

돈은 회전하고 있었다. 돈으로 살 것의 목록만이 얇아졌다.

은행 앞에선 기묘한 광경도 생겼다. 현금 인출 줄 — 사람들이 돈을 뽑으러 왔다. 돈을 뽑아서 뭘 할 건지는 애매했지만 돈이 손에 있으면 안심이 됐다. ATM 앞에선 노부부가 다투는 걸 봤다 — '뽑지 마' '뽑아야 해'. 돈이 살 수 있는 것의 목록이 얇아진 세상에서 돈은 위안이었다.

무기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최고의 미사일을 만드는 회사들이 있었다. 최첨단 레이더, 군집 드론, 위성 — 밥을 제외한 모든 걸 만드는 회사들.

그 회사들이 공장 가동을 줄인 건 미사일이 필요 없어서가 아니었다. 미사일 부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원자재가 안 들어와서가 아니었다.

사람이 밥을 못 먹어서다.

공장 노동자가 굶으면 미사일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나온다는 걸 무기 장사가 제일 늦게 알았다. 기술로는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믿던 사람들이 기술로 못 만드는 유일한 것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미사일 생산 라인이 가동 중단된 이유는 부품이 아니라 점심이었다. 공장 식당이 문을 닫자 라인이 멈췄다 — 8시간 노동이 아니라 8시간 노동을 지탱하는 점심 한 끼가 없어서.

무기 장사는 살 궁리를 냈다. 자체 식량 확보팀을 꾸려서 바다 건너 쌀 경로를 뚫으려 했으나 조합 인증 레일에 막혔다. 비인가 경로는 없었다. 국방이 국방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 총도 미사일도 밥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미사일은 못 먹잖아."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른다. 그냥 도시에 떠돌던 말이다.

국책연구소도 있었다.

화성 탐사선을 쏘아올리는 데는 성공한 나라였다. 달 기지 건설도 진행 중이었다. 양자컴퓨터도 뇌-기계 인터페이스도 세포 재생 의학도 있었다.

국민 밥은 없었다.

우주로 가는 로켓이 지상의 쌀 한 톨도 만들지 못한다는 건 놀라운 발견이 아니라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봉쇄가 그 '당연함'을 다시 가르쳐 줬다.

한 연구원이 방송에 나와 말하는 걸 봤다. 자기 연구가 무슨 쓸모가 있냐는 질문에 그 사람은 정직하게 대답했다.

"제 연구는 30년 뒤의 인류를 위한 겁니다."

인터뷰어가 되물었다.

"그럼 오늘의 인류는요?"

연구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기술은 밥의 대체품이 아니었다. 기술은 밥 위에 얹힌 것이었고 밑의 게 빠지면 전부가 흔들렸다.

연구소들이 자체 식량을 확보하려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수직농장 시설을 지하 벙커에 만들어서 버티겠다는 계획 — 실제론 수확 주기가 40일이 넘어서 의미 없는 계산임을 모두가 알았다. 그래도 '뭔가를 하는 것'은 중요했다. 손 놓고 굶는 것보다 계산하며 굶는 게 나았으니까.

우리 회사 '짐짝'도 다르지 않았다.

물류 플랫폼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옮기는 일을 했다. 옮길 것이 없으면 옮기는 시스템도 없다. 알고리즘은 완벽하게 돌아갔고 최적 경로는 매초 계산됐고 배차 성공률은 언제나 100%에 가까웠다.

배차할 게 없어서 배차할 수 없었다.

관제실 화면에서 초록 점이 회색으로 바뀐 지도를 매일 봤다. 그 점들이 멈춘 게 아니라 우리가 그 점들에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관제라는 일은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는 일인데 움직이는 것이 없으면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팀원들이 물었다.

"팀장님, 우리 뭐 해요."

"모니터링해요."

"뭘요."

"…회색 점이 언제 초록으로 바뀌는지."

사람들이 필요 없어지는 건 이런 식으로 오는 거였다. 시스템은 완벽한데 시스템이 관리할 대상이 사라진 것.

무기 회사들은 다르게 쓰러졌다.

미사일은 만들 수 있었다 — 원료는 있고 공장은 돌아가고 주문서는 쌓였다. 근데 그걸 먹을 사람이 없었다. "국민 밥 먹이기" 프로젝트라는 사내 살 궁리도 있었다 — 무기값으로 쌀을 사들인다는 발상. 쓸 돈은 무기값뿐인데 살 수 있는 건 무기뿐이었다.

조합에 쌀을 주문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거절당했다는 답과 함께.

정확한 상황이었다. 무기 장사는 세상에서 제일 힘센 장사 중 하나였는데 — '돈으로 못 사는 것' 앞에서는 다 같은 약한 장사였다. 미사일을 팔아서 쌀을 사려면 쌀을 파는 쪽이 미사일을 받아줘야 했는데 — 조합은 미사일을 필요로 하지 않았으니까.

배양 단백질로 계산한 숫자를 다시 꺼내 본다.

국가가 총동원하면 버틸 수 있는 양 — 전국이 먹어야 할 식량의 6%.

빵공장이 밀가루 없이 굴러가고 양조장이 쌀 없이 굴러가고 육가공장이 사료 없이 굴러가는 비율을 합산하면 그렇게 나온다. 이 6%는 칼로리가 아니라 시간을 만든다 — '몇 달 버틸 수 있나'가 아니라 '몇 달 안에 답을 찾아야 하나'의 시간.

그리고 하나 더.

문화도 멈췄다.

콘서트가 취소됐고 극장이 문을 닫았고 스포츠 리그가 중단됐다. 사람들이 즐길 거리를 잃은 게 아니라, 즐기는 데 필요한 '식탁'이 먼저 무너졌다 — 공연장 앞의 포장마차, 경기장의 핫도그, 출근길의 커피가 없는 세상에서 문화는 겉돌았다.

아이돌 콘서트가 취소되자 팬덤이 행동했다 — 콘서트장 앞에서 '우리 가수 밥 먹여라' 시위를 했다. 노래하고 춤추고 공연하는 사람들이 무엇보다 먼저 밥 앞에 무릎 꿇었다. 음악은 자급자족이 안 되는 세상 — 음악을 만들 사람이 밥을 먹어야 했다.

세상은 '즐거움'을 팔 수 있어도 '끼니'는 팔 수 없었다. 끼니를 파는 건 조합의 몫이었으니까.

조합 대변인이 인터뷰에서 한 마디를 했다.

"우리는 기다리는 중입니다. 안전은 서두르는 게 아니니까."

'안전'이라는 단어 — 그들이 정한 일정을 세상이 받아들이는 순간이었다. 봉쇄는 기다림의 기술이었고 조합은 그 기술을 완벽히 쓰고 있었다.

그날 밤 금융가에 불이 꺼졌고 방산 공장의 셔터가 내려갔고 연구소들이 예산 삭감 공문을 받았다.

세상이 자랑하던 것들이 — 돈, 무기, 기술 — 전부 밥 없이는 하루를 못 간다는 걸, 세상은 천천히 배워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