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다시 일어선 사람들
토요일 오후 2시, 시청 광장.
3만 2천 명이 모였다는 공식 집계가 나왔다. '식량 주권 회복 집회' — 피켓에는 다양한 문구가 있었다.
「쌀값은 먹는 사람이 정한다」
「식탁을 돌려달라」
「가격상한법 즉시 발의」
「62일의 실패를 잊지 않는다」
나는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십 년 전에도 여기 있었다는 생각을 하며.
광장 풍경은 기묘하게 익숙했다. 같은 석조 건물, 같은 계단, 같은 분수대. 다른 건 사람들 얼굴이었다 — 십 년 전엔 분노가 있었다면 지금은 피로가 먼저 보였다. 저항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인데 저항으로 지친 사람들의 모임.
옆에 선 중년 남자가 나를 흘끔 봤다.
"또 왔어요?"
"네. 또 왔어요."
"저도요. 십 년 만에." 그가 피켓을 내렸다. "그때는 이길 줄 알았는데."
연단에 선 첫 번째 연사는 '값'을 연구하는 대학 교수였다.
"조합은 가격을 정합니다. 몫을 정합니다. 길목을 정합니다. 이것은 독점입니다—"
박수가 터졌다.
"—그런데 법적으로는 독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조합은 '협동조합'이니까요. 이 모순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두 번째 연사는 법률가였다. 반독점 소송을 재개하겠다는 선언. 세 번째는 노동자 대표. 길과 창고의 노동자들이 조합 불매에 동참한다는 발표.
그리고 마지막 연사는 — 예상 밖이었다.
중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가 올라왔다.
"저희 집은 쌀을 못 산 지 일주일 됐어요. 엄마가 걱정할까 봐 말 안 했는데 저는 알아요. 오늘 저녁도 죽을 먹을 거예요."
광장이 조용해졌다.
"어른들이 62일 동안 싸웠다는데 저는 62일이 얼마나 긴지 몰라요. 근데 일주일도 길었어요. 그러니까 저는 여기 나왔어요."
박수는 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무언가를 닮기 시작했다.
한 아이가 '일주일도 길었어요'라고 했을 때, 광장에 있던 수만 명이 각자의 일주일을 떠올렸을 거다. 냉장고에 남은 쌀을 세는 일주일, 마트 줄에서 서성인 일주일, 아이에게 '괜찮다'고 말한 일주일.
연단 위의 아이는 울지 않았다. 그냥 사실을 말했고 그 사실이 광장을 가장 무겁게 눌렀다. 박수로 바꿀 수 없는 무게였다.
집회 후미에 서 있을 때였다.
한 여성이 자전거를 끌고 지나갔다. 자전거 뒷자리에는 커다란 비닐 봉지 두 개 — 열무김치와 상추였다. 집에서 직접 기른 것 같았다.
"판매하세요?" 누군가 물었다.
"판매 안 해요. 나눔이에요." 여성이 웃었다. "집에서 나온 거라 돈 받으면 좀 그래서."
사람들이 한 줌씩 가져갔다. 나도 한 줌을 받았다 — 상추 세 장. 생산이 가능한 사람이 무상으로 나누는 것. 이게 지금 도시에서 유일하게 '허락 없이 생산된 것'이었다.
"시골에서 농사 지으세요?"
"예전에 했어요. 근데 이제 등록 안 하면 못 하잖아요." 여성이 말했다. "도시에서 조금씩 하는데 이게 다예요. 이것도 심사 나올까 봐 조마조마해요."
아버지의 자급구역이 떠올랐다 — 법적으로 보호된 곳과 보호받지 못하는 곳의 차이.
소담의 교환소를 들렀다.
집회가 끝난 저녁 골목은 더 붐볐다.
"어, 팀장. 집회 갔다 왔구나."
"응. 너는 안 갔어?"
"갔어야지. 가서 뭐 했을 것 같아?" 소담이 웃었다. "사람들 밑천 봤지. 다들 오늘 뭘 가져왔는지 보면 바닥이 보이거든."
장부를 넘겨줬다.
오늘의 바꿈값: 쌀 1kg = 노동 4시간. 밀가루 1kg = 노동 3시간. 계란 한 판 = 통조림 3개. 그리고 새로 생긴 항목 — '화분 흙 20kg = 쌀 2kg'.
"흙이 쌀보다 비싸졌어."
"당연하지." 소담이 말했다. "심어서 자길 거라고 믿는 사람이 아직 있으니까. 62일 때 베란다에서 씨 말렸던 기억이 다들 흐릿해졌나 봐."
"너는 믿어?"
소담이 장부를 덮으며 대답했다.
"나는 안 심어. 나는 중개만 해. 심는 사람이 있어야 중개할 게 생기지."
집회는 일주일에 두 번으로 늘었다.
가격상한법 발의 서명이 백만을 넘었고 반독점 소송 준비단이 꾸려졌고 조합 불매 서명이 다시 시작됐다.
이번엔 다를 수도 있다는 공기가 있었다.
62일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 이번엔 조합이 '식탁' 자체를 잡고 있다는 것. 굶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짧다는 것. 그것이 각오를 단단하게도 초조하게도 만들었다.
관제실에서 정우가 물었다.
"팀장님, 이번엔 이길 수 있을까요?"
"이기는 게 뭘 것 같아?"
"쌀 풀리는 거요."
"그건 조합이 풀어야 생기는 거야. 우리가 하는 건 조합을 압박하는 일이지, 쌀을 만드는 일이 아니야." 나는 화면을 보며 말했다. "압박은 시간 싸움이고 시간 싸움은 먹는 쪽이 유리해. 근데 이번엔 우리도 시간 싸움을 하고 있어."
나는 회의감과 희망 사이 어디쯤에 있었다.
그리고 이틀 뒤 정부가 브레이크를 걸었다.
「식량가격상한법안, 심사 보류 — '현재 진행 중인 공급 재개 협상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집회 주최 측의 반발이 올라왔다.
「협상에 지장? 지금 우리가 겪는 게 협상인가 협박인가.」
정부의 답은 없었다.
대신 한 국회의원이 익명으로 기자에게 한 말이 떠돌았다.
"지금 법을 건드리면 조합이 테이블을 걷어찹니다. 우리가 먼저 무릎 꿇는 모양새가 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재고가 다 떨어져 가거든요."
나는 그 기사를 읽으며 계산했다.
실질 동원 재고 7일치.
'법을 건드리면 테이블을 걷어찬다'는 논리 — 우리가 무릎을 꿇는 속도를 우리 스스로 정하게 만드는 장치.
정부도 국회도 광장도 전부 같은 수학 앞에 서 있었다. 무릎을 꿇느냐, 버티느냐가 아니라 — 며칠 버틴 뒤 무릎을 꿇느냐의 문제.
7일이라는 숫자를 보며 깨달았다. 집회가 늘어나는 건 희망이 커져서가 아니다. 시간이 줄어들어서다.
조합은 기다리고 있었다.
요구 없이 침묵으로 우리가 스스로 어디까지 굴복할지를 지켜보며.
그날 밤 소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팀장, 오늘 이상한 사람 왔다 갔어.」
「누구?」
「조합 사람인 것 같아. 아무것도 안 사고 장부를 한참 보다가 갔어. 마지막에 한마디 하더라.」
「뭐라고?」
「'물물교환 재밌네요. 근데 곡물이 안 들어오는 장은 오래 못 가요.'」
나는 그 문장을 몇 번 읽었다.
위협이 아니라 정보였다.
조합은 물물교환 장터도 보고 있다는 뜻. 그리고 그 장이 '곡물 없는 장'이라는 걸 그들이 가장 잘 안다는 뜻.
곡물이 들어오지 않는 교환소는 교환할 '것'이 소진되면 끝난다.
소담의 장도 나의 관제도 광장의 함성도 — 전부 곡물 없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의 문제로 환산된다.
조합은 그 환산표를 쥐고 있었다.
그날 밤 아버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도시의 재고가 7일 남았습니다. 곡물은 어디 있습니까.」
답은 새벽에 왔다. 짧았다.
「곡물은 여기 있어. 다만 너희에게 오는 길이 잠겼을 뿐.」
잠긴 길. 인증.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 이 게임의 규칙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