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7 / 25 목차
2부 · 배경 이야기

7화. 가격은 조합이 정한다

황금기가 끝난 정확한 날짜는 기록에 없다.

끝나는 데 날짜가 필요 없는 것들이 있다. 가격도 그랬다. 어느 날부턴가 쌀이 조금씩 비싸졌고 어느 해엔가 '적정 가격'이라는 단어가 뉴스에 등장했고 어느 계절부턴가 쌀값이 '장터'가 아니라 '발표'의 영역으로 넘어가 있었다.

언제 끝났는지는 모른다. 다만 우리 모두 어느 새 끝난 세상에 살고 있었다.

그 전에 경시의 역사를 먼저 말해야 한다.

농사가 '가치 없는 일'이 된 과정은 쌀이 싸진 과정과 정확히 겹쳤다. 쌀이 당연해지자 쌀을 만드는 일이 사라졌다 — 시야에서. 뉴스에도 안 나오고 자랑거리도 아니고 장래희망 목록 맨 밑의 직업.

내 또래 애들이 농부 아버지를 두고 하던 말이 있었다.

"흙 파는 일."

농담이었다. 그리고 사실이었다. 흙을 파고 씨를 뿌리고 김을 매는 일 — 그 일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일인데 제일 천하게 불렸다.

장래희망 조사 시간에 '농부'라고 쓴 아이는 없었다. 선생님이 직업 카드를 나눠주면 다들 의사·변호사·개발자·디자이너를 골랐다. '농부'는 카드에도 없었다 — 카드 목록에서 빠진 직업이 장래희망이 될 리 없었다.

한 번은 친구가 물었다. "이다솜 너희 아빠는 뭐 하셔?" 내가 대답했다. "농부야." 그 아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농부가 왜 아직도 있어? 기계가 다 하는데."

맞는 말이었다. 기계가 다 했다. 사람이 남은 건 '아직'이었다 — 아버지의 말 그대로 마지막 반 세대.

후세 사람들은 농사를 배우지 않았다. 배울 이유가 없었으니까. 쌀은 항상 있었고 값은 항상 쌌고 그걸 만드는 건 '기계가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경시는 나쁜 감정이 아니었다. 그냥 잊는 것에 가까웠다. 너무 잘 굴러가서 안 보이게 된 것.

그리고 그 경시당한 자리를 로봇 회사들이 물려받았다.

아무도 원하지 않은 자리를.

나중에 조합이 된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그 '아무도 안 보던 자리'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는 것이었다.

조합의 가격통제는 정교했다.

세 단계로 이뤄졌다.

첫째, 통합 곡물 장터. 전 세계 곡물의 사고파는 일이 하나의 창구로 모였다. 개별 농가나 쌀이 남는 소규모 나라는 더 이상 제값에 못 팔았다 — 창구가 하나라는 건, 가격표가 하나라는 뜻이니까.

둘째, 생산 몫. 지역별·작물별로 '적정 생산량'을 정했다. 많이 심으면 벌점 적게 심으면 상. 과거 산유국들의 카르텔이 원유로 하던 짓이었다. 공급을 죄면 가격은 서고 공급을 풀면 가격은 주저앉는다 — 조합은 그 밸브를 쥐었다.

셋째 값의 바닥선. '생산자 보호'라는 이름의 최저가. 밑으로 떨어지는 건 막아줬다 — 대신 위로 오르는 것도 그들이 정했다.

세 단계가 완성되자 쌀값은 더 이상 장터 위의 숫자가 아니었다.

조합이 정하는 숫자였다.

1973년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있었다.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배운 걸 다들 까먹었지만 그해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를 잠갔을 때 세계는 몇 달 만에 무릎을 꿇었다. 요구가 아니라 시연이었다 — '기름 없이 못 산다'는 걸 전 인류가 배운 계절.

그때 배운 건 산유국도 세계도 마찬가지였다.

산유국은 배웠다: 우리가 쥔 걸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세계는 배웠다: 우리는 기름 없이 못 산다.

곡물 쪽에도 이미 선례는 있었다. 봉쇄 이전 시대 — 서너 개 회사가 세계 곡물 길목의 대부분을 손에 쥐고 있던 때가 있었다. 법은 그걸 독점이라 부르지 않았지만 수확기 때마다 사고 파는 가격은 그들의 창구에서 정해졌다.

조합이 한 일은 그 구조에 '법적 독점'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뿐이었다. 새로운 일이 아니라 있던 일의 완성.

그리고 시간이 지나 산유국보다 영리한 사람들이 같은 걸 곡물로 했다.

차이가 하나 있다면 기름은 대체할 수 있고 쌀은 대체할 수 없다는 것.

조합 안에 교리가 있다는 소문도 그즈음 돌기 시작했다.

내부 문서 유출 건은 공식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제목만은 어디선가 흘러나왔다 — 「신농업선언(안)」이라는 문서. 식량 생산을 문명의 제1 의무로 선언하고 생산 주체를 세계질서의 정점으로 올린다는 선언문 비슷한 무언가.

그때 사람들은 웃었다. 가격 깎으려는 회사들의 치장쯤으로 여겼다.

기르는 쪽이 언제나 밑바닥이었던 세상에서 '기르는 쪽이 정점'이라는 문장은 공상 같았으니까.

근데 뒤집어 생각해보면 — 기르는 쪽이 정점이 아닌 세상은 지금까지 어땠는가.

농사짓는 사람은 가장 먼저 가난해졌고 가장 먼저 늙었고 가장 먼저 사라졌다. 그런데 그 사람이 없으면 그 위에 얹힌 모든 것 — 돈도 길도 손도 — 도 자기 자리를 잃는다는 걸 세상은 봉쇄가 와서야 깨달았다.

종속형 종자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어느 해부턴가 밭에 심는 씨앗은 전부 조합 라이선스였다. 접합 유전자가 심어진 종자 — 발아 억제 단백이 활성화된 씨앗은 땅에 떨어져도 싹이 트지 않았다.

싹을 트게 하려면 '인증 발아제'가 필요했다.

조합이 판매하는 활성 용액.

씨앗을 사면 씨앗이 아니라 '발아 권한'을 샀다. 심을 수 있는 권리를 매년 갱신하는 구조 — 사람들은 그걸 '구독 씨앗'이라고 불렀다.

"우리 집 벼는 구독형이에요."

농담처럼 들리는 문장이 농담이 아니었다.

이 장치가 무서운 건 '씨앗이 안 튼다'가 아니었다. '매년 계약 갱신을 해야 씨앗이 씨앗 노릇을 한다'는 점이었다.

씨앗은 한 번 사면 끝이었던 것이었다. 대대로 물려주던 것 심고 거두고 다시 심는 순환. 그걸 끊어놓은 것이다 — 씨앗을 '일회용'으로 만든 장치.

농사가 '재배'에서 '재구매'로 바뀐 순간이었다.

아버지 집 장독대 밑에는 병이 하나 묻혀 있었다.

어릴 때 본 기억이 있는데 아버지는 그 병을 대대로 옮겨 묻었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물려줬고 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아버지의 할아버지에게 물려줬다고.

병 안에는 씨앗이 있었다.

조합 라이선스가 아닌 씨앗. 접합 유전자가 없는 씨앗. 땅에 떨어지면 저절로 싹이 트는 씨앗.

한 번 아버지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거 심으면 돼?"

"돼."

"근데 왜 안 심어?"

아버지는 그때 대답 대신 웃었다.

"심는다고 다가 아니야. 지켜야지. 씨앗은 지키는 거야."

"지키다가 언제 써?"

"모르지." 아버지가 장독대를 손바닥으로 쓸며 말했다. "씨앗은 쓸 날을 모르는 게 좋아. 알면 못 지키니까."

그때는 그 말뜻을 몰랐다.

씨앗을 '심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라는 아버지의 문법을 나는 봉쇄가 오고서야 이해했다.

지킨다는 건 필요한 날을 위해 안 쓰고 두는 것.

그리고 하나 더 조합의 영리함은 '합법성'에 있었다.

조합은 어느 나라 법도 어기지 않았다. 가격 담합은 '공동 마케팅'으로 생산 몫은 '공급 안정'으로 바닥선은 '생산자 보호'로 포장됐다. 반독점 소송은 번번이 패했다 — 조합은 '독점'이 아니라 '협동조합 연합'이었으니까.

법은 형식을 본다. 조합은 형식의 달인이었다.

62일 보이콧은 그런 세상에서 일어났다.

가격이 한 번 더 오르던 해,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다. 돈이 왕이던 세상의 마지막 저항이었다 — 사는 사람이 사는 것으로 싸우려 했던, 살 '것'이 상대 손에 있던 싸움.

나도 거기 있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