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3 / 25 목차
1부 · 현재 이야기

3화. 요구 없는 봉쇄

혜성을 찾아가기 전 나는 공식 경로도 먼저 봤다.

식량비상대책본부의 내부 회의에서 나온 건 우리의 9일치 재고 계산이었다. 다음 날 본부장의 지시로 '봉쇄 원인 분석'이 시작됐지만 결론은 빨랐다 — "조합 측과의 접촉 채널이 확보되지 않았습니다."

공식 경로의 답은 항상 같았다. '확인 중', '분석 중', '접촉 시도 중'. 답이 없는데 답을 만드는 게 행정의 일이었다.

조합은 연락이 됐다 — 자동응답이었다. '문의사항은 공식 채널을 이용해 주십시오.' 공식 채널은 게시판이고 게시판에는 답변이 없었다. 인증 회사의 답변 구조 — 인증 없이는 답도 없다는 구조.

문혜성을 찾아가는 데 이틀이 걸렸다.

연락처가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전 조합 유통레일 수석 아키텍트 — 공식 이력엔 '퇴직'이라고 쓰여 있고 업계에선 '탈출'이라고 부르는 사람. 조합에서 나온 뒤로 주소도 번호도 수시로 바뀐다는 소문이었다.

'탈출'이라는 단어가 붙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조합은 직원이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회사였다 — 아니,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 나간 사람이 '바깥에서 보이는 걸' 통제하는 회사였다. 유통레일의 구조를 아는 사람은 레일이 어디에 약한지도 아는 사람이니까.

나는 그 사람이 필요했다. 레일을 설계한 손이 필요했다.

내가 찾은 방법은 물류업자식이었다.

혜성이 직접 만든 '오프레일 물자망' — 인증 바깥에서 움직이는 소량 화물의 비공식 경로 — 의 중개 노드 몇 개를 추적했다. 그 사람은 조합의 레일에서 나갔지만 레일을 설계한 손은 못 버렸다. 손버릇이 보였다.

찾아간 곳은 변두리 옥탑방이었다.

문을 연 사람은 사진보다 마르고 눈만 또렷했다.

"짐짝 배차관제 이다솜입니다."

"알아요."

"…네?"

"내 오프레일 노드 세 개를 추적해서 와놓고 몰랐을까요." 혜성이 옆으로 비켰다. "들어와요. 찾아온 덴 이유가 있을 테니."

옥탑방 안은 사람 사는 집이라기보다 작전실 같았다.

벽에 붙은 지도 단말기 세 대, 그리고 창문에 둘러진 차폐 천.

"뭘 숨기세요?"

"나를요." 혜성이 차를 내놓으며 말했다. "조합은 날 못 찾으면 좋겠어서요. 건너편 이야기나 하죠. 무슨 일이에요?"

"걸쇠를 풀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걸쇠라." 혜성이 웃었다. 비웃는 게 아니라, 오랜만에 듣는 단어라는 얼굴이었다. "누가 그렇게 불러요?"

"제가요. 안에서 채우는 거니까."

그제야 혜성이 나를 제대로 봤다.

"맞아요. 안에서 채우는 거예요. 트럭이 잠긴 게 아니라, 신뢰가 잠긴 거예요. 인증 차량은 '이 적재물이 인증 경로를 거쳤나'를 스스로 묻고 답이 인증되지 않으면 안 움직여요. 파괴가 아니라 질문이죠."

"그래서 풀 수 없다?"

"풀 수 없는 게 아니라, '풀 권한'이 바깥에 없어요. 인증 합의는 조합 내부 서명으로만 갱신돼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차를 부수는 것뿐이고 부순 트럭은 그냥 못 움직이는 쇳덩어리예요."

"그럼 아버지 말대로 걸어서 쌀을 날라야 하고."

"아버지가 누군데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얘기할 단계가 아니었다.

대신 물었다.

"조합은 왜 아무 요구도 안 해요? 돈도 법도, 사과도 안 요구해요. 봉쇄는 보통 뭘 얻으려고 하는데."

혜성이 잠시 창밖을 봤다.

옥탑방 창은 도시가 내려다보였다. 마트 줄이 실처럼 이어지는 광경. 혜성이 그걸 보며 한참 말이 없었다.

"봉쇄를 뭐라고 생각하세요?"

"…밸브를 잠근 거죠."

"반만 맞아요." 혜성이 말했다. "밸브를 잠근 건 맞는데 뭘 얻으려고 잠근 게 아니에요. 잠긴 상태가 목적이에요. 답이 아니라 문제를 보여주는 거죠."

"이다솜 씨, 요구가 있는 건 협상이에요."

"그럼 이건 뭐예요?"

"시연이요."

혜성이 단말기 하나를 켜며 말했다.

"1973년에 중동이 석유를 잠갔을 때, 조건이 뭐였는지 아세요? 처음엔 아무 조건도 없었어요. 그냥 안 판 거예요. 세계가 알아서 깨닫기를 기다린 거죠. '너희가 우리 없이 못 산다'는 걸 배우는 계절이었어요."

"……그게 조합이 지금 하는 일이다?"

"조합은 가격을 정해온 회사들이에요. 몫을 정하고 바닥선을 정하고. 그런데 십 년 전 62일 보이콧 이후로 '저항하면 뭔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환상이 아직 남아 있었어요. 그 환상을 죽이는 게 이 봉쇄예요."

혜성이 화면을 돌려 보여줬다.

"요구가 없는 게 증거예요. 뭘 얻으려는 게 아니라, 보여주려는 거니까. 기다리는 것 자체가 시범이에요. 세상이 스스로 항복 문서를 써올 때까지."

혜성이 덧붙였다.

"하나 더 있어요. 조합 안에선 이 봉쇄를 '시범'이라고 안 불렀어요."

"뭐라고 불렀는데요?"

"'선언 준비'요."

그 말의 의미를 나는 아직 몰랐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봉쇄'라고 불렀지만 조합의 언어로는 아마 다른 이름이겠지.

'의존성 확인'. '시스템 교육'. '계절'. 아니면 — '선언'.

"근데 하나 더." 혜성이 말을 이었다. "보여줄 게 있어요. 이거 보려고 온 걸지도 몰라요."

화면에 뜬 건 로그 파일이었다.

스탠바이 명령의 원문 — 인증 차량 전체에 내려간 '대기' 명령. 발신 시각, 발신 서명, 전파 경로가 다 적혀 있었다.

"명령 시각을 보세요."

저녁 8시 52분.

"검은이삭 첫 보도가 언제였죠?"

"8시 56분이었어요." 나는 기억했다. 그날 밤 내내 숫자를 봤으니까.

"4분 빨라요."

혜성이 로그를 접었다.

"명령이 보도보다 4분 먼저 갔어요. 오염이 확인되기 전에 대기 명령이 준비돼 있던 거예요. 아니, 확인'보도' 전에 준비됐다는 게 정확한 말이죠."

"…준비된 봉쇄였다?"

"명분은 사후에 만들어졌어요." 혜성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오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나도 몰라요. 근데 명령이 먼저 갔다는 건 — 그들은 사건을 '기다린' 게 아니라 '준비한' 거예요. 사건이 없었으면 다른 사건이 왔을 거예요."

나는 로그를 다시 봤다.

20:52:11, 스탠바이 명령 작성 — 큐에 올라간 시각. 20:56:00, 첫 보도 송출.

4분.

세상이 멈추는 데 필요한 건 대규모 동의가 아니었다. 4분의 사전 준비와 아무도 묻지 않을 줄거리 하나면 됐다.

"이 로그, 왜 가지고 있어요?"

"나가면서 챙겼어요." 혜성이 담담하게 말했다. "언젠가 물을 사람이 올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혜성이 잠시 멈췄다.

"그리고 저는 그날 밤 안쪽에 있던 사람이니까요. 로그를 돌린 손 중 하나예요. 그걸 알고도 잠든 밤이 있었어요."

나오는 길 혜성이 뒤에서 물었다.

"아버지 이야기, 아까 안 하셨죠."

"……네."

"물어보는 이유가 있어요." 혜성이 작은 종이를 건넸다. "자급구역 단말에서 나온 신호가 요즘 조합 측 추적을 받아요. 자급구역은 원래 '관심 밖'이었는데 봉쇄 이후 관찰 대상이 됐어요."

종이에는 좌표와 시각이 적혀 있었다.

"조합이 자급구역을 왜 관찰해요?"

"간단해요." 혜성이 말했다.

"그들의 선언은 '우리 없이는 못 산다'가 전제인데 자급구역은 우리 없이 사는 사람들이니까. 선언이 서려면 예외는 보이면 안 되거든요."

나는 종이를 쥐었다.

정읍 산골 전북-자급-0117.

아버지가 있는 곳.

내려오는 길에 옥탑방 문 앞에서 혜성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 있었다.

"이다솜 씨, 가게 되면 한 가지만 전하세요."

"뭔데요?"

"'거기 있는 밥'이 세상에서 제일 비싼 밥이 될 거라고. 저 사람들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움직일 곳이 자급구역이니까. 예외는 지우거나 지우지 못하면 품는 거예요."

나는 이해 못 했다 — 품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는.

아버지에게 가는 길 내내 그 단어를 곱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