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재고 11일
아버지의 메시지를 스무 번쯤 들은 뒤에야 나는 일을 시작했다.
일이라는 게 뻔했다. 숫자를 세는 것.
관제센터에는 전국 물류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흘러들어온다. 봉쇄 후에도. 트럭은 멈췄어도 단말은 살아 있으니까. 콜드체인 온도 사일로 재고 화물 터미널 적치량 항만 컨테이너 반출입.
아버지 목소리가 귀에 남아 있었다. 서른 날 만의 신호가 굳이 어제저녁이었다는 것. 밤 뉴스에서 '각국 정부 공급 재개 요청 문안 조율 중'이라는 보도가 돈 그 저녁에.
우연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우연 같은 걸 안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생각을 접고 화면을 켰다.
대책본부가 매일 발표하는 '비축 현황'은 공식 문서 기준이다. 문서는 거짓말을 안 한다. 대신 문서는 묻지 않는 것을 세지 않는다.
나는 다른 걸 세기로 했다.
"정우야, 커피 좀. 아니, 그냥 물."
"네."
화면에 시트를 띄웠다.
첫 번째 항목: 국가 비축미 공식 재고. 공공비축 기준 산정치, 40일분. 그 안에는 양곡창고 미곡종합처리장, 비축 사일로가 포함된다.
두 번째 항목: 그 쌀이 '지금' 어디 있는가. 내가 볼 수 있는 건 단말 위치다. 비축 사일로의 78%가 농촌권에 있다. 당연하다. 쌀은 들녘에서 나오니까.
세 번째 항목: 그 쌀을 '도시로' 옮기는 수단. 여기서 숫자가 갈라진다.
곡물을 실을 수 있는 건 조합 인증 차량뿐이다. 전국 곡물 수송량의 96%를 인증 차량이 담당했다. 나머지 4%의 비인가 차량이 있지만 —
"비인가 수송 적발 시 차량·적재물 압수, 운송업 정지 5년."
비상령 조항이었다. 몰래 쌀을 나르는 건 불가능한 게 아니라 '파산하는' 일이었다. 파산 각오로 움직이는 차가 몇 대나 되겠나. 그리고 그 양이 얼마나 되겠나.
도로는 열려 있다. 고속도로도 국도도 시골길도 다 열려 있다. 그 위를 승용차가 달리고 사람이 걷는다. 다만 곡물만 못 움직인다.
멈춘 게 도로가 아니라는 걸 이 도시 사람들은 처음엔 몰랐다. 도로가 멈췄으면 뚫으면 되는데 — 멈춘 건 '허락'이었다. 허락은 물리로 못 뚫는다.
네 번째 항목: 비인가 4%가 하루에 옮길 수 있는 양. 계산은 간단했다. 차량 수 × 평균 적재 × 일일 왕복.
결과가 나왔다.
"……11일."
"네?"
"실질 동원 가능 재고. 11일치."
정우가 얼어붙은 얼굴로 내 화면을 봤다.
"방송에선 40일이라는데요."
"방송의 40일은 '쌀이 있다'는 뜻이고 내 11일은 '쌀이 온다'는 뜻이야. 사람은 창고를 안 먹어. 식탁을 먹지."
그날 오후 슈퍼마켓 연합이 구매 제한을 공식화했다.
쌀 2킬로그램, 라면 5개, 계란 한 판, 물 6병. 카드 한 장당 하루 한 번.
나도 점심시간에 줄에 섰다. 관제센터 말고 세상을 보고 싶어서.
한 시간을 섰다. 앞에 선 중년 남자가 쌀 한 포대를 받아 들고 나오는 걸 봤다. 포대를 어깨에 메는 자세가 무게를 받는 게 아니라 아이를 업는 사람 같았다.
내 차례가 왔을 때 진열대엔 쌀 한 포대분이 남아 있었다. 계산하고 나오니 뒤에 선 사람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 다음은 없다는 걸 아는 얼굴.
뉴스 화면에 줄 선 사람들이 비쳤다. 인터뷰하는 기자가 주부에게 물었다.
"불안하시죠?"
"불안하죠. 근데 뭐 어떡해요. 다들 똑같잖아요."
다들 똑같다는 말이 이 도시의 방패였다. 아무도 혼자 굶지 않는다는 확신. 그게 무너지면 다음 단계가 온다는 걸 나는 물류 하는 사람으로 안다.
화물의 생리가 있다.
재고가 보이면 사람은 줄을 선다. 재고가 안 보이면 사람은 문을 깬다. 차이는 쌀의 양이 아니다. '보이느냐'다.
길에서 마주친 풍경이 하나 더 있었다.
배달 오토바이들. 음식은 없는데 앱은 살아 있으니 기사들은 빈 짐칸을 달고 도시를 돌았다. 뭔가를 나르는 게 일인 사람들이 나를 것이 없어 도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지금 가장 먼저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위에 얹힌 일들의 무너짐은 뉴스가 아니라 내 눈앞에 있었다. 쌀이 안 오면 음식이 없고 음식이 없으면 배달이 없고 배달이 없으면 그 사람들의 날짜가 없다.
한 사람의 끼니가 사라지는 건 집의 문제지만 그 끼니를 옮기던 사람이 사라지는 건 밥벌이의 문제다. 우리는 그 둘을 동시에 보고 있었다.
저녁 7시, 회사 임원회의가 화상으로 열렸다.
대표가 말했다.
"상황이 이러니, 전 사업부 긴축 모드입니다. 배차관제팀은… 현재 업무 실체가 없으므로 인력 50% 순환 무급휴가를 검토하겠습니다."
순환이라는 단어를 붙여도 무급휴가다.
누군가 물었다.
"봉쇄 풀리면 복귀인가요?"
"당연하죠."
"그게 언제인데요?"
대표는 답하지 않았다.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이 나라에 몇이나 될까. 아니, 세계에.
이 봉쇄는 한국만의 일이 아니었다. 조합연합은 전 세계에 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지구 전체의 인증 차량이 함께 섰다.
뉴스는 며칠째 각국 상황을 순서대로 훑었다. 밀 곡물창고가 잠긴 나라, 쌀이 나가던 항이 멈춘 나라, 바이오 연료 공장이 멈춰 버스가 선 나라. 어느 나라는 조용히 줄을 섰고 어느 나라는 이미 긴급사태를 선포했다.
공통점은 하나였다. 어느 나라도 '뚫는' 선택지를 못 쓴다는 것.
회의가 끝나고 정우가 말했다.
"팀장님은 안 잘리실 거 아니에요."
"잘리면 뭐가 달라져? 남아도 할 게 없는데."
"그래도," 정우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팀장님 없으면 저 회색 점들 누가 봐요. 아무도 안 보면 진짜 멈춘 거잖아요."
회의 뒤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갔다. 연결음은 울렸다. 받는 사람이 없었다.
자급구역의 단말은 원래 그랬다 — 구형 기기, 산간 신호, 아버지가 귀에 대고 살지도 않는 물건. 서른 날 동안 연락이 없었던 건 사고가 아니라 일상이었다.
그런데 어제 그가 먼저 보냈다.
메시지 함에 '읽음' 표시가 안 떴다. 읽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닌 단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회색 점을 봤다.
밤 9시, 뉴스가 헤드라인을 띄웠다.
「정부, 조합연합에 '식량 공급 재개 공식 요청' 발표 — 주요 40개국 동시 발송」
화면 속 대변인이 읽는다.
「인류 공동의 식탁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각국 정부는 영농조합연합에 공급 재개를 공식 요청합니다.」
정우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럼 이제 풀리는 거예요? 요청했으니까?"
나는 화면을 보다가 대답했다.
"정우야, '요청'이라는 단어가 왜 쓰였을 것 같아?"
"네?"
"'요구'는 패가 있을 때 하는 거고 '요청'은 패가 없을 때 하는 거야."
화면 한 켠에 조합연합의 답이 자막으로 올라갔다. 성명 한 줄.
「식품안전이 확인되는 대로 공급을 재개한다.」
서른 날 동안 똑같은 한 줄. 네 번째.
나는 생각했다.
조합은 답을 바꾸지 않는다. 바꿀 이유가 없으니까. 기다리는 쪽이 시간을 쓰는 쪽이다. 그리고 시간은 지금 조합 편이다.
자정을 넘겨 아버지의 메시지를 다시 들었다.
「여기는 밥이 있다. 너는 있니.」
여기는 밥이 있다.
자급구역에는 밥이 있다. 그들은 봉쇄로 굶지 않는다 — 애초에 조합의 밥을 안 먹던 사람들이라서.
도시에는 줄이 있다. 내 계산으론 열하루 치의 줄.
그리고 나는 이제 알았다.
정부가 '요청'을 보내기 시작한 날 아버지가 메시지를 보낸 건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아버지는 뭔가를 알고 있다.
최소한 서른 날째의 이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를.
그리고 나는 모니터 벽을 올려다봤다.
4만 2천 개의 회색 점. 그 점 하나하나가 곡물 수십 톤을 안고 멈춰 있다. 냉장고는 돌아가고 배터리는 충전되고 쌀은 신선하게 잠들어 있다 — 도착하지 않은 채로.
11일.
그 숫자를 시트에 남겨두고 나는 오늘도 소파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