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1 / 25 목차
1부 · 현재 이야기

1화. 오전 6시 41분

봉쇄 서른 번째 날 나는 관제센터 소파에서 눈을 떴다.

천장 형광등은 밤새 한 번도 꺼지지 않았고 모니터 벽은 여전히 4만 2천여 대의 차량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부 같은 색으로. 회색. 스탠바이.

운행 중이 아니라 운행 대기 중.

대기한 지 서른 날째였다.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니 어깨가 돌처럼 무거웠다. 야간 당직은 끝났지만 집에 가는 대신 여기서 자는 게 나았다. 집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집에는 '있어야 할 것'이 없다.

쌀. 라면. 계란. 통조림. 그리고 밥을 지어 줄 사람.

냉장고에는 비상식량 두 끼분이 남아 있었다. 정확히 언제 비게 될지를 나는 날짜로 계산하고 있었다 — 집에 가서 쓸모없는 계산일 뿐이지만 계산하는 게 내 직업이었다. 없는 걸 세는 게.

관제센터는 24시간 불이 켜져 있다. 침낭이 구비된 휴게실, 간이 샤워실, 어제까지는 커피 머신도 있었다. 지금은 원두가 떨어져서 죽은 기계일 뿐이지만.

서른 날째 이 센터가 나에겐 집보다 집이었다.

서른 번째 아침의 도시는 뉴스가 말하는 것과 달랐다.

뉴스는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폭동은 없었다. 창문이 깨진 곳도 거의 없었다.

대신 사람들이 이상해졌다.

6시 40분의 대로변. 출근길이어야 할 시간에 차는 거의 없고 대신 마트 앞에 줄이 늘어서 있었다. 쌀은 1인당 2킬로그램, 라면은 다섯 개까지 — 비상 배급이라는 이름의 규칙.

줄은 조용했다. 싸우는 사람도 없고 새치기도 없었다. 그냥 다들 앞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서 있었다. 살 게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채로.

줄 맨 앞엔 배급표를 찍는 기계가 서 있었다. 손바닥을 대면 등록된 가구 수가 뜨고 그만큼만 나간다. 표를 못 찍는 사람 — 외국인 노동자 노숙인, 등록 밖에 있는 사람들 — 은 줄 맨 끝에서 남은 걸 기다렸다.

카페는 문을 열었지만 커피 원두는 동난 지 오래고 편의점엔 에너지바와 껌만 남았다. 빵집은 며칠째 셔터를 내린 채였다. 식재료가 없으니까.

그리고 사람들이 일을 했다.

빈 사무실에 출근해 회의를 열었다. 올 것도 없는 물건의 납기를 조율하고 받을 것도 없는 대금의 결재를 돌렸다. 일은 멈추지 않았다 — 일은 계속하는 게 일이니까.

그게 제일 이상한 광경이었다. 먹을 게 없는데 출근은 한다는 것. 세상은 밥이 아니라 습관으로 돌아간다는 것.

우리 관제센터에서 제일 잘 보이는 건 그거였다.

사람은 이동한다. 멈춰 있어도 언젠가는 이동한다.

물건은 이동하지 않는다. 옮기는 것이 없으면 영원히 거기 있다.

"팀장님, 또 안 가셨어요?"

출근한 막내, 정우가 말했다. 팀 서른 명 중에 아직 나오는 사람은 넷뿐이다. 나머지는 '재택'이거나 '무급휴가'거나, 솔직하게는 아무도 모른다.

"가면 뭐 있는데?"

"그렇긴 하죠."

정우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근데 있잖아요, 어제 배민 접속해봤어요? 메뉴가 다 떠요. 삼겹살, 치킨, 마라탕. 주문 버튼도 눌러져요."

"품절이지."

"맞아요. 근데 그게 웃겨요." 정우가 고개를 저었다. "메뉴는 있는데 음식이 없는 거예요. 플랫폼은 멀쩡하게 살아있고 내용물이 없어요. 애플리케이션은 배고프지 않잖아요."

애플리케이션은 공중에 세운 일이고 음식은 흙 속에 묻은 일이다. 공중의 일은 아무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화면도 뜨고 결제도 되고 정산도 됐다.

먹을 것이 없을 뿐.

오전 8시, 정기 리포트를 켰다.

우리 회사 '짐짝'은 물류 플랫폼이다. 자체 트럭은 한 대도 없고 전국의 수송 차량과 화주를 이어주는 중계다. 배차 알고리즘이 먹고사는 회사라 내 자리 이름이 배차관제팀장이다.

배차할 차가 멈췄으니 관제할 것도 없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관제는 계속된다. 트럭이 '고장' 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제 밤 로그 떴어요?" 물었다.

"떴죠. 변동 없음." 정우가 화면을 돌려 보여줬다. "전 단말 상태 동일. 배터리 자가충전 정상. 냉장 유닛 순환 정상. 위치이동 제로."

"냉장 유닛은 돌아간다고?"

"네. 차는 안 움직이는데 냉장고는 돌아가요. 안에 실린 거 상하지 말라고."

웃긴 일이었다. 쌀을 실은 트럭이 멈춰 선 채로 쌀을 신선하게 보관하고 있었다. 도시에선 쌀이 금값인데 고속도로 휴게소엔 쌀 수백 톤이 냉장 상태로 주차돼 있다.

거기 있고 여기 없다. 옮길 수 없어서.

옮길 수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검은이삭 사태' 이후 곡물을 실을 수 있는 건 조합 '인증' 차량뿐이었다. 그리고 인증 차량은 전부 서 있었다.

비인가 수송? 적발 즉시 압수. 몰래 실어 나르다 걸리면 차도 곡물도 다 잃는다.

차는 멀쩡하고 도로는 열려 있는데 곡물만 못 움직인다. 그게 이 봉쇄의 전부였다.

그리고 제일 이상한 건 따로 있었다.

조합이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

봉쇄 서른 날 동안 조합연합이 낸 성명은 딱 세 번 내용은 한 줄이었다.

「식품안전이 확인되는 대로 공급을 재개한다.」

요구가 없었다. 돈을 달라는 것도 법을 바꾸라는 것도 사과를 하라는 것도 없었다.

협상이 없는 봉쇄. 그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문장이었다.

오전 6시 41분.

그 시각을 나는 아직도 못 잊는다.

서른 날 전 검은이삭 첫 보도가 나온 저녁. 식품안전 비상 선언이 떨어지고 두 시간 뒤 내가 모니터 벽 앞에서 본 것.

그날 밤 관제센터엔 당직 세 명이 있었다. 나, 정우, 그리고 야간 엔지니어 김 씨. 검은이삭 뉴스가 뜨고 한 시간쯤 뒤, 정우가 '이상하다'고 중얼거렸다. 야간 배차 숫자가 스르르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다.

처음엔 미세했다. 부산 구간의 차 두 대가 경로를 이탈했고 평택 물류단지의 열 대가 속도를 줄였다. 오류인 줄 알았다.

그리고 파도가 왔다.

대한민국이 멈추는 건 사이렌이나 폭발이 아니었다.

숫자였다.

야간 배치 카운터가 4만 1천에서 3만 8천으로 그리고 0이 아니라 4만 2천 '스탠바이'로 올라갔다. 주행 중이던 차들이 하나씩, 전부, 동시에 속도를 줄이고 갓길로 휴게소로 화물 터미널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고장이 아니었다. 고장은 제각각이다. 저건 합의였다.

4만 2천 대가 같은 시간에 같은 결정을 내렸다.

나는 재난을 보며 가장 먼저 한 일이 배차 알고리즘 수동 정지였다. 배차할 게 없으니까. 그다음이 아버지 전화였다.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서른 날 동안 아버지와 나의 마지막 연락이었다.

오후가 되어 도시는 한층 더 조용해졌다.

점심은 비상식량 — 회사가 사둔 에너지바 박스를 나눠 먹었다. 구내식당은 벌써 보름째 안 열었다. 재료가 안 온다고 했다.

"팀장님."

정우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모니터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저거… 원래 저렇게 뜨나요?"

모니터 벽의 가장자리 '비인가 단말' 탭이었다.

곡물 인증 레일 바깥의 단말들 — 영세 수송업체의 낡은 트럭 농촌 구형 기기들이 뜨는 탭. 인증 바깥이라 곡물을 실을 수는 없지만 통신은 잡히는 것들.

내가 그 탭을 항상 열어두는 이유는 하나였다.

거기에 아버지의 기기가 뜨니까.

이판석. 정읍 산골 자급등록농. 등록 번호 전북-자급-0117. 구형 탈곡기 한 대, 손재주 밭 이랑 여러 줄, 그리고 조합이 아무리 조여도 안 없어지는 '자급'이라는 등록 꼬리표.

서른 날 동안 그 아이콘은 항상 회색이었다. 자급구역은 봉쇄 대상이 아니라 그냥 '관심 밖'이라 신호조차 간헐적이었다.

지금 그 아이콘이 깜빡이고 있었다.

'업링크 시도'.

"뭐야 저게."

나는 의자를 끌어 화면 앞으로 갔다. 자급구역 단말이 바깥 망으로 뭔가를 보내려 한다는 뜻인데 서른 날 동안 그런 건 한 번도 없었다.

터치해서 열었다.

데이터 패킷이 아니었다.

음성 파일 하나. 길이 9초. 아버지가 구형 단말기로 녹음해서 보낸 거였다.

재생을 눌렀다.

아버지 목소리가 나왔다. 서른 날 만에 듣는 목소리는 내가 기억한 것보다 조금 작았다.

「다솜아.」

한 번 숨을 쉬고

「여기는 밥이 있다.」

그리고 멈췄다가

「너는 있니.」

9초. 끝.

관제센터가 조용했다. 정우가 내 눈치를 보다가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는 모니터 벽을 올려다봤다. 4만 2천 대의 회색 점들. 멈춰 선 나라.

자급구역에는 밥이 있고 도시에는 줄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나라에서 '옮기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메시지를 세 번째로 다시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는 서른 날 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 산골엔 원래 신호가 그랬다.

그런데 지금 보냈다.

밤 뉴스에서 '각국 정부 공급 재개 요청 문안 조율 중'이라는 보도가 도는 바로 이 저녁에.

아버지는 지금 왜 연락을 했을까.